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만(朴福萬)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417

공훈사항

박복만 순경은 1929년 7월 2일 충북 제천읍 제천리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북 제천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제천 제원리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제천경찰은 지역 내 주요시설 경비, 제천-원주, 제천-충주, 제천-영월을 잇는 주요 도로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3일 박 순경은 제천 봉양읍에서 원주 방면의 도로를 경비하던 중 북한군 정찰부대로 추정되는 1개 소대규모의 적과 조우하여 박 순경의 경비 팀과 적 부대 간 교전이 벌어졌다. 약 1시간가량의 전투 끝에 박 순경의 팀은 적 3명을 사살하였으며, 박 순경의 경비 팀원도 2명이 전사했다.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여 7월 3일 영월, 7월 4일 여주가 함락되었고, 7월 6일-7월 10일 사이 충청도 지역에서는 청주-충주-제천을 연하는 선에서 전선이 형성되었다. 제천경찰은 군부대가 배치되지 않은 지역에 투입되어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북한군의 남진이 계속 되자 제천경찰은 군부대와 병행하여 지연전을 펼치며 단양-영주-안동-의성을 거쳐 7월 30일 칠곡에 도달했으며,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까지 이곳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각 도(道) 경찰도 경찰관서 수복작전에 나섰다. 제천경찰은 9월 25일 제천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을 유지하며 잔적소탕작전을 전개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들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 지침을 하달하고 전국적으로 공비토벌을 실시하도록 했다. 박 순경은 제1차 작전에 참가하여 공비 수 명을 사살하는 공을 세웠다. 이어서 4월 15일부터 제2차 공비섬멸작전을 수행하던 제천경찰과 4월 17일 제천 제원리에 출현한 공비들 간 교전이 벌어졌다. 박 순경은 위험을 무릅쓰고 적을 공격하여 공비 1명을 사살하고 계속 작전을 수행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만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ㅋ-03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