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률(朴福律)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6803266
  • 전몰일자 : 19510625

공훈사항

박복률 이병은 1933년 12월 21일 경상남도 거제군 옥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15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제19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복률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을 때인 1951년 1월 말, 제6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로 전곡-백의리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장호원 북쪽의 적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사단은 2월 11일 시작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일명 중공군 2월공세) 시에는 주공격 방향이 아니어서 큰 전투가 없었다. 이후 사단은 중공군들이 공세를 멈추자 바로 반격으로 전환하여 사창리까지 진출했으나, 이곳에서 중공군의 강한 저항을 받아 공격을 중단하고 방어로 전환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사창리전투에서 많은 피해를 입고 용문산 일대로 철수했다. 그리고 5월 16일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용문산 방어진지에서 효과적으로 물리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5월 20일부터 용문산에서 반격하여 5월 28일에는 화천저수지 이남까지 진출했다. 박복률 이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사단의 조공으로 6월 5일부터 취봉-백암산 방향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6월 10일에는 연대의 최종 목표인 취봉을 확보하고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제6사단은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논의되면서 큰 전투는 없어졌고, 장병들은 방어진지를 보강하며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했다. 박 이병이 소속된 중대는 6월 17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고 즉각 소탕작전을 실시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박복률 이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부산에 위치한 제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곳 병원에서 의료진들의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51년 6월 25일에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률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6-ㅅ-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