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남(朴福男)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100013
  • 전몰일자 : 19500709

공훈사항

박복남 이등상사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군번과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할 때, 그는 1947년 12월 중순경에 경기도 양주군 공덕리의 제1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박복남 이등상사는 1948년 10월 28일에 경기도 시흥에서 창설된 제17연대로 창설 요원으로 전속되었다.
박복남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949년 6월 20일에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되어 서울 용산으로 이동했으며, 11월 15일에 옹진지구전투사령부로 예속되어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제2연대로부터 38도선 경계임무를 인수했다. 연대는 64km의 정면에 2개 대대를 배치하고 1개 대대는 예비로서 옹진부근에 집결시켰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포격에 이어 전면적인 침공을 실시했다. 옹진반도에는 북한군 제6사단 14연대와 제3경비여단을 투입했다. 박복남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7연대 장병들은 병력 및 화력의 열세를 무릅쓰고 지연전으로 저항하다가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6월 26일 아침 부포항에서 해군 LST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대전으로 이동하여 육본 경비임무를 수행하다가 6월 30일 오산과 평택 사이의 갈곶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북한군 제105전차 및 제4보병사단은 7월 5일 오전 7시 반에 미 스미스특수임무부대의 죽미령 방어진지를 공격했다. 스미스부대는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세로 인해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철수했고, 그 동쪽을 방어했던 제17연대도 스미스 부대가 철수하는 것을 확인 후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7월 9일에 제1사단에 합류하기 위해 보은으로 이동했다. 이날 박복남 이등상사는 소대원들을 인솔하여 후위 경계를 하며 부대의 후미에서 이동했는데, 이때 북한군 선견부대의 공격을 받고 전투가 전개되었다. 이날 그는 치열한 전투를 치루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남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6-ㅈ-05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