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규(朴福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0320325
  • 전몰일자 : 19510104

공훈사항

박복규 이등상사는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경 제3사단에 입대하여 병기중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등상사는 1950년 3월 27일까지 향로봉, 양산, 울산 일대의 공비소탕작전에서 병기 정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사단은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었고, 7월 1일부터 8월 16일까지 울진, 영해, 영덕 일대에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하다, 17일 장사동에서 해상철수를 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사단은 8월 20일 다시 전투에 투입되어 포항과 형산강 변 일대에서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국군은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을 차례로 탈환하고, 30일에는 강릉을 탈환했다. 사단은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후 박 이등상사와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했다. 사단은 25일까지 송전반도-영흥-고원-마전리-안변을 연결하는 원산 서북방의 외곽선을 확보 후 지역 내 잔적을 소탕했다.
사단은 10월 29일 북진을 계속하기 위해 함흥에 집결 후 11월 4일 신포로 이동했고, 18일 길주로 이동했다. 사단은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30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철수명령이 하달되었다. 사단은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 묵호,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진지가 돌파당하자 사단은 군단 작전명령에 따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이등상사는 병기 선임하사관으로서 병기 정비와 탄약 보급에 앞장서다 1951년 1월 4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규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05판-7면-17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ㄹ-01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