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규(朴卜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5301819
  • 전몰일자 : 19510805

공훈사항

박복규 상병은 전라남도 화순군 용하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3월 중순, 전라남도 광산의 제20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제20연대는 제5사단 예속으로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 대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박복규 상병이 소속된 제20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이 침략했을 때, 육본명령에 의해 서울 북방의 미아리방어선으로 투입되었다. 그러나 국군은 방어체계가 붕괴되었고, 한강방어선에 투입되었다가 7월 5일 평택에서 해체되었고, 장병들은 제2사단에 통합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했을 때, 제11사단이 후방지역작전을 위해 창설되었다. 이때 예하 부대로 제9·제13·제20연대로 편성했다.
제20연대는 7월 5일에 해체되었다가 9월 25일에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를 개편하여 재창설되었다. 박복규 상병은 제20연대 창설 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이후 연대는 10월 초순에 광주지역으로 이동하여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서 공비 토벌작전을 실시했고,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실시하여 세력으로서의 공비 활동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박복규 상병이 소속된 제11사단은 4월 6일에 공비토벌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을 맞아 철수를 거듭하다가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사단은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향로봉(간성)-건봉산 방향으로 반격하여 6월 10일에는 건봉령을 좌우로 잇는 선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전선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8월 5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규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1면-693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ㄹ-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