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교(朴福敎)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2200059
  • 전몰일자 : 19500829

공훈사항

박복교 이등중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에서 1930년 3월 3일에 출생하였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이등중사는 1950년 2월경 입대한 후 제8사단 10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8사단은 강원도 인제군으로부터 양양군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서 38도선 지역의 경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이른 새벽 38도선을 지나 국군의 기지를 공격하며 기습남침을 감행하였다. 당시 제8사단은 각 연대를 지연전과 방어전으로써 배치했다. 국군은 방어와 함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역습을 시도해 적에게 피해를 줬으나 적의 병력과 화력이 우세해 강릉을 상실하고 낙동강 지역까지 지연전을 펼쳤다.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1950년 8월 1일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으로 집결함을 확인하고 제50포병 대대 지원을 받아 안동 북쪽의 천등산과 연곡동 일대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했다. 후에 북한군은 입암에 도착하여 기계 방면으로 향할 목적으로 아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평에는 아군이 없었다. 북한군은 정황을 포착하고 진격을 개시했다. 국군은 1950년 8월 10일 북한군 제7사단이 기계 방면으로 이동했다는 제보에 격퇴를 위해 전투를 벌였다.
제8사단 10연대는 도평 337고지, 361고지에서 침입하는 적을 치열한 접전 끝에 저지하였고 수석봉에 진출하여 방어태세에 돌입하였다. 이후 제8사단 10연대는 그 일대에 유격대를 배치함으로써 방어태세를 강화하였다. 하지만 북한군은 1950년 8월 19일 용마산 방면으로 끊임없이 침투하였고, 제8사단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교전했다. 결국 제8사단은 1950년 8월 22일 515고지와 함께 633고지를 점령하고 공격을 개시하여 북한군을 패주 시켰다. 북한군은 569고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국군의 방어진지를 기습하였다. 그러나 제8사단은 수색대를 파견하여 정찰하며 북한군의 역습을 격퇴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5일 보현산 북방 도처에 침입을 개시하였다. 제8사단 각 연대를 비롯하여 아군 또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제8사단은 유엔 공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의 주저항선에 대대적인 폭격을 실시했다. 또한, 국군은 방어진지 구축과 함께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였다. 제8사단은 박격포 지원으로 북한군의 방어진지를 분쇄하고 566고지, 500고지를 점령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 이등중사는 1950년 8월 29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교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7-ㄱ-08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