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보국(朴保國)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224000
  • 전몰일자 : 19520812

공훈사항

박보국 이등중사는 1928년 6월 8일에 함경남도 정평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작전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11월 29일에 경상남도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본 직할인 제6경비대에 배치되었다.
박보국 이등중사가 소속된 경비부대는 그가 전입 왔을 때인 11월 중순에 서울 인근에 주둔하며 적 게릴라 소탕 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 주력은 10월 24일과 11월 24일에 총공세를 펼쳤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당하여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북한군 패잔병들은 유엔군의 주요 병참선이 지나가는 철원-김화-평강 일대에서 게릴라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했고, 또한 서울 인근에서 주요시설을 습격하고 유엔군 병참선을 위협하고 있었다. 육본 직할 경비부대는 서울 인근에서 이러한 적 게릴라 소탕 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대규모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주력을 서울을 향해 총공세를 펼쳤고, 이에 보조를 맞춰 적 게릴라들은 더욱 후방교란 활동에 적극성을 띠었다. 이에 정부와 육군본부는 다시 부산으로 이전하였고, 경비부대는 육군본부가 이전한 후에도 서울에 남아 적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던 1951년 1월 5일 새벽에 아군 주력부대가 서울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을 확인한 후에 철수했다. 그 후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세를 평택-삼척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반격작전을 실시하면서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박보국 이등중사가 소속된 경비부대는 당시 육군본부가 위치한 대구에서 경비임무를 수행하며 적 게릴라 소탕 작전을 병행하여 실시했다. 적 게릴라 부대는 전국 곳곳에서 후방교란작전을 실시했으며, 특히 육군본부가 위치한 대구 부근에서 극성을 부렸다. 그러던 중 박보국 이등중사는 1952년 8월 9일 대구 인근에 나타난 적 게릴라 소탕 작전 중에 적을 추격하다가 적의 기습에 맞아 중상을 입고 제3이동외과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회복되지 못하고 8월 12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보국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11묘역-2판-86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7-ㅅ-09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