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희(朴炳熙)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위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009

공훈사항

박병희 경위는 1926년 7월 14일 경북 칠곡군 인동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남도경 청양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대둔산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경위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북한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후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파죽지세로 남진했다. 충남경찰 비상경비사령관은 예하 경찰관서에 특별경계로 적의 오열과 지방공비를 색출하도록 지시했다. 충남경찰은 군의 요청에 따라 경부선의 주보급로 경비를 맡아 7월 1일부터 충남 직속대대 100명으로 대전-영동 간의 철도경비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100명을 옥천과 대천 외곽에, 100명을 금강과 신탄진에 배치하여 경계에 임하게 하였다.
7월 11일 충남경찰 300명과 서울경찰 200명으로 제1대대(윤석렬 총경), 경기경찰 300명과 혼성병력 200명으로 제2대대(이만흠 총경)를 편성한 후 제1대대는 청양에, 제2대대는 홍산에 배치하여 군의 작전에 협력, 청양-대천 선에서 적을 저지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청양경찰이 소속된 제1대대는 예산 방면에서 남진 중인 적 유격대를 급습하여 20명을 생포했고, 홍성군 산성면에서는 적과 교전하여 포로 50명, 사살 2명의 전과를 거두었다. 이후 청양경찰은 북한군이 남진함에 따라 7월 13일 대전으로 후퇴했다.
북한군의 남진으로 7월 20일 대전이 함락되자 청양경찰은 미처 퇴각하지 못하고 대전에 잔류하여 게릴라전을 펼치며 적을 타격하다가 은거지를 대둔산으로 옮겼다.
8월 24일, 게릴라전을 수행하던 청양경찰이 대둔산에서 적 정찰부대와 조우하면서 쌍방 간 교전이 벌어졌다. 박 경위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 3명을 사살하고 계속 작전을 수행하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희 경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ㅋ-07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