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훈(朴炳勳)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0180305
  • 전몰일자 : 19510901

공훈사항

박병훈 병장은 경기도 여주군 상동면(現 여주시 상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30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병훈 병장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1・4후퇴로 37도 선까지 물러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재탈환 작전을 실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 때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가평-횡성-여주-영주 일대로 철수하였으나, 영주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을 격멸했다.
그 후 사단은 1951년 3월 3일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태기산 전투(3월), 인제 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고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박병훈 병장의 제27연대는 4월 25일부로 인제를 목표로 공격하는 사단의 예비대로서 주공인 제35연대를 후속하다가 제35연대의 소양강 도하와 동시에 619고지로 진출하여 사단 후방지역을 경계했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은 중공군 3개 사단의 집중 포위공격 속에서도 홍천 일대 풍암리까지 조직적으로 격전과 철수를 반복하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美 제10군단은 화천저수지-해안분지-향로봉-거진을 연결하는 新캔자스(Kansas)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이에 사단은 5월 25일부터 6월 2일까지 북한군 제2군단을 격퇴하여 적을 인제・한계리 부근까지 후퇴시켰다.
계속해서 사단은 6월 4일 한계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격전 끝에 북한군 제2·13사단을 격퇴하고,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의 고지들을 점령하면서 新캔자스을 확보했다. 사단의 좌전방부대인 제27연대는 서화리-원통 간 도로 우측의 명당산-피양동-서화리-987고지 방향으로 공격했으며, 명당산에서 연이틀 계속해서 적의 선제 기습공격을 받았으나 치열한 격전 끝에 이를 격퇴시켰다.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은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제5사단은 8월 28일 해안분지 남단의 캔자스선으로 이동하여 제27연대를 동측, 제35연를 서측에 배치시키고, 제36연대를 예비로 하여 재편성 중이었다. 박병훈 병장은 9월 1일 양구 일대에서 소대원과 함께 공격준비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훈 병장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5판-2면-12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3-ㅎ-06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