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홍(朴炳洪)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957937
  • 전몰일자 : 19510122

공훈사항

박병홍 일병은 경상북도 영주군 영주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1차, 2차 공세로 38도선으로 철수할 때인 1950년 12월 초순에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1연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었다. 이때 제17연대를 예속시키고, 이어 11월 11일과 13일에 신편 된 제31연대와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사단은 재창설 얼마 후 서울에서 포천-평강 지구로 이동하여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할 때, 제2사단은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12월 13일까지 진지구축을 완료하였다.
박병홍 일병이 소속된 제2사단은 곧 다가올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진지 보강에 힘썼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주공격 방향으로 하여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감행했다. 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공격에 맞서 방어진지에서 한 치도 물러날 수 없다는 각오로 싸웠다. 그러나 후방이 중공군에 의해 차단되면서 방어진지는 와해 되었고 장병들은 후방으로 철수했다.
박병홍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초에 제2사단은 방어진지에서 철수 후 가평-청평을 거쳐 여주로 이동하고 1월 7일에 충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부대를 재정비하며 충주-단양 간 병참선경계를 실시했다. 그리고 1월 22일에 보급로 경계임무 수행 중 북한군 침투조의 공격을 받았으나 즉각적인 반격으로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홍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8-ㅎ-07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