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호(박병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802671
  • 전몰일자 : 19510610

공훈사항

박병호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11월 하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본부에 배치되었다.
제11사단은 지휘소를 남원에 두고, 예하 연대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제9연대가 경남에, 제13연대가 전북에, 제20연대가 전남 지역에 각각 분산 배치되어 후방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사단은 1951년에 접어들면서 게릴라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게릴라의 재집결을 봉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작전을 전개했다. 특히 유엔 공군의 지원을 받아 육군과 공군의 합동작전까지 전개했다.
박병호 일병은 제9연대로 파견을 나가 3월 17일에 화학산 일대에서 게릴라들과 교전해 86명의 게릴라를 사살하고, 3월 22일에는 순천을 습격한 게릴라들과 교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 결과 공비들의 세력 단위 활동은 소멸되었으나, 소규모 활동은 이어 갔다.
제11사단은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 인계 완료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4월 공세시에 속초-간성 일대에서 철수하여 양양 북방의 대포리를 연하는 선에서 저지했다. 이후 5월 7일부터 인접부대인 수도사단과 함께 반격을 실시하여 11일에 마등령-저항령-989고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박병호 일병이 소속된 제11사단은 5월 16일에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로 다시 철수를 거듭하여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어서 사단은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간성-건봉산 방향으로 반격하여 6월 10일에 거진-건봉령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3-ㄹ-04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