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호(朴炳鎬)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2802461
  • 전몰일자 : 19500929

공훈사항

박병호 이등중사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사회가 북한공산세력들의 교란으로 혼란하던 1949년 2월 28일에 경기도 시흥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동년 6월 20일에 수도경비사로 배속되어 서울 용산으로 이동했다가 11월 15일에 옹진지구전투사로 배속되어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제2연대로부터 38도선 경계임무를 인수했다.
제17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반격했으나 전투력 열세로 퇴각했으며, 6월 26일 아침 부포항에서 해군이 지원한 LST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어 대전으로 이동하여 잠시 육본 경비임무를 수행하다가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지연전에 참가했다. 이후 7월 17일에 상주 일대 화령장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 주력을 섬멸하는 전과를 올렸다.
박병호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낙동강방어선의 기계-안강지역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결국 격렬한 적들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작전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때 제17연대는 육군으로서는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었으며, 9월 13일에 안강전투에서 곤계봉을 탈취한 후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연대는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 후에 영등포 남쪽으로 기동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하고자 했다.
제17연대는 9월 25일 오후 2시에 신사리에서 서빙고로 한강을 도하하여 즉시 남산으로 진격했다. 적의 경미한 저항을 물리치면서 남산 동쪽 능선과 보광동 일대와 매봉(174고지), 그리고 무학여고가 내려다보이는 고지 일대를 점령했고, 다음날 망우리ᐨ면목동 일대에 진출하여 퇴각하는 적의 전차 10대를 노획했다. 또한 9월 28일 아침에 잔적을 소탕하며 서울 중심지로 입성하여 밤 12시를 기하여 중앙청 및 경무대 경비 임무를 해병대로부터 인수했다. 박병호 이등중사가 소속된 대대는 다음날인 9월 29일에 잔적 소탕을 실시했는데, 이날 전투에서 그는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호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7-ㄹ-02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