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현(박병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35175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박병현 하사는 경상북도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박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박 하사는 1950년 11월 1일에 입대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의거해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전입할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에 투입되어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를 담당하였다. 사단은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이어서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9사단은 강원 정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후 제9사단은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가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이 두타산의(1,361고지) 북쪽의 삼화리를 경유해 이동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하여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3월 12일 송계리에 투입되었다.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4월 중순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하면서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5월 7일에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후 중공군은 5월 16일,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박 하사는 적탄에 맞아 1951년 5월 19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현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ㅅ-00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