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혁(朴炳赫)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76593
  • 전몰일자 : 19520812

공훈사항

박병혁 하사는 경상북도 영주군 안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12월 22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병혁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2년 1월 하순, 제6사단은 양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으로 전기전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제6사단은 방어진지 전방의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기 위해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정면의 중공군을 크게 격파하고 교암산-송동리까지 진출했다. 나아가 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949고지를 11월 17일과 18일 양일 간에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방어진지 보강에 집중하다가 1952년 1월 10에 미 제9군단에서 배속해제 되면서 양구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그리고 3월 22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하였고, 이어서 4월 5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국군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당시 제6사단은 제2, 제7연대를 전방연대로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고지군 상의 주진지를 점령하고, 제19연대는 예비로 죽동에 위치했다. 박병혁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교암산 일대를 점령하고 있다가 5월 22일에 제19연대에 방어진지를 인계하고, 연대는 사단 예비로 전환하여 부대정비 및 진지보강공사,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했고, 전선은 한동안 소강상태를 유지되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8월 12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혁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6판-2면-04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ㅁ-04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