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학(朴炳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5532
  • 전몰일자 : 19510119

공훈사항

박병학 일병은 1930년 10월 1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실시하던 1950년 11월 10일에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병학 일병이 부대로 전입갔을 때에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이 조직적인 공격을 실시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11월 24일을 기해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단행했다. 그러나 25일 중공군의 대반격으로 후방이 차단당하자 다시 후퇴작전을 실시하게 된다. 박병학 일병은 12월 초에 장병들과 함께 북창을 거쳐 시변리-고랑포 지역으로 철수했다.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3차 공세(신정공세)로 방어진지에서 철수한 후 1951년 1월 7일에 평택-안성-장호원을 연하는 선으로 이동하여 죽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반면 중공군은 서울을 점령한 후 전력이 소진돼 더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박병학 일병을 비롯한 장병들은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하여 모든 전력을 경주하였다. 중부전선과 중동부전선에서는 3차 공세 개시 직전의 상황과 유사하게 북한군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연막차장을 실시하였고 항공관측에서도 대병력의 남하가 자주 목격되었다. 이후 1월 중순,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장호원 북방의 죽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이에 유엔군은 1월 15일부터 적정을 파악하기 위해 위력수색작전을 실시하고, 그 결과 중공군이 수원-이천 선에서 방어하고 있고 추후 공격작전을 획책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추후 있을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문막 북쪽의 판대리 부근으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박 일병은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박병학 일병은 1951년 1월 19일 판대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45판-8면-2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5-ㅍ-01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