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하(朴秉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8277
  • 전몰일자 : 19501027

공훈사항

박병하 일병은 경상북도 선산 고아읍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병은 1950년 6월경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에 기습남침을 감행했다. 당시 제8사단 제21연대는 지연전을 펼치며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적의 병력과 화력이 우세해 강릉지역을 상실하고 후퇴하게 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제8사단은 1950년 8월경에 안동지역에서 영천 북방으로 이동하여 방어했다. 이 시기, 북한군은 용마산 방면으로 끊임없이 침투하였고, 제8사단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수색대를 파견하여 북한군의 역습을 방어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후 경상북도 영천군 보현산 부근의 전투는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 영천 북방에서 공격을 실시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입암-영천 부근 도로를 봉쇄했지만, 북한군의 대규모 병력이 공격하여 방어진지가 돌파되었다. 이에 제8사단 장병들은 후퇴하여 사령부를 금호로 이동시키고 적의 영노동, 작상동 선에 위치한 포위망을 돌파하며 영천군을 재탈환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제8사단과 국군은 1950년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을 시작했다. 북한군은 1950년 9월 24일에 240고지에서 전초진지를 구축하여 강렬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국군의 군사력에 대응하지 못하고 의성 시내, 영주와 풍기 서북방의 15km 지점 939고지에서 패주했다. 이후 제8사단 제21연대는 1950년 10월 8일 제10연대를 선두부대로 하여 초성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돌파해 북한군 제27사단의 일부 병력을 격퇴하면서 전곡에 진출했다.
1950년 10월 9일에는 연천, 10일에는 철원을 탈환하고 평강으로 도주하는 북한군을 바짝 뒤쫓았으며 이천-곡산-수안-율리를 거쳐 18일에는 평양 동쪽의 삼등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박 일병은 안타깝게도 1950년 10월 27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부부위패04판-0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9-ㄹ-03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