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표(朴秉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87321
  • 전몰일자 : 19511117

공훈사항

박병표 일병은 1924년 8월 14일 평안남도 중화군 동내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섰다. 그는 1951년 2월 13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연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공산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인제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4월 초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인제군 한계리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방어선인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하자, 장병들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연대는 5월 말 강원도 양양 서쪽의 마산리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 작전과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수도사단에 작전지역을 인계한 후 강원도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연대는 서희령 일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선의 요철을 정리할 목적으로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명령했다. 이에 연대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북한군은 제3사단이 탈취한 전진기지를 탈환하기 위해 계속해서 역습을 실시했으나, 사단은 이를 물리치고 고지를 지켜냈다. 박 일병은 진지를 지키며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11월 17일 전투에서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표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33966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10묘역-7판-125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ㅁ-00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