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태(朴炳泰)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91920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박병태 하사는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박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박 하사는 1953년 1월 21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9사단은 1953년에 들어 포격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주저항선과 전초기지의 교통호를 물결형으로 보강하는 한편 전 유선망을 교통호 지하에 매설했다.
중공군은 1953년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에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중공군은 제2단계 공세로 1953년 6월 11일부터 북진능선을 공격했다. 제9사단은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백병전이 난무하는 치열한 전투를 한 끝에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고지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중공군은 1953년 7월 13일에 금성 돌출부에 대하여 마지막 대공세(‘7·13 공세’)를 감행했다. 이에 제9사단은 북진능선전투와 계웅산 전투에서 수류탄전과 백병전이 난무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중공군 제70·제72사단의 공격을 격퇴하고 동 고지들을 지켜냈다.
철수를 완료한 제9사단은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철원 서북방의 백마고지와 금화지구에서 중공군과 대치했다. 대치와 동시에 제9사단은 주저항선을 보강하면서 백마고지, 평강 진출로 상에 있는 신화산(343고지)과 그 주변 고지 일대에서 소규모 진지쟁탈전과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이 전투에서 박 하사는 끝까지 진지를 지켜내다 1953년 7월 16일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1-ㅂ-00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