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치(朴炳致)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5563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박병치 중위는 전라북도 군산시 영화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 및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으로 38도선을 돌파하여 진격하던 1950년 10월 중순에 부산 동래의 육군종합학교로 입교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2월 9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그리고 제2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 소대장으로 보직되었다.
제2사단은 11월 7일부로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면서 제17연대와 신편 된 제31,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재창설 직후 사단은 지휘소를 서울에서 가평으로 이동하고, 제17연대는 철원, 제32연대는 의정부, 배속된 제5사단 제35연대는 구화리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1연대는 제5사단에 배속되어 홍천 일대에서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해 12월 중순에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진지구축과 철조망 설치 등 방어준비를 강화했다. 그는 항상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한 후 사단에 보고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시작하여 서울을 압박했다.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를 사수하며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자 했으나 이미 적은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며 포위 섬멸을 기도하자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진지에서 이탈하여 청평으로 철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적들이 후방을 차단한 상태여서 이들과 전투를 실시하며 돌파해야 했다.
박병치 중위가 지휘하는 수색소대원들은 적진에서 적 후방의 지휘소 및 보급소를 습격하여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날 수색소대는 적들의 보급소를 습격하여 큰 피해를 주었으나 적들의 강력한 반격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는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치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7판-6면-24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8-ㅊ-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