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춘(박병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303269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박병춘 일병은 전라남도 나주군 전주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8년 4월 26일 제2여단 제4연대에 입대했다. 제4연대는 1946년 2월 15일 창설되어 지리산 일대의 공비소탕작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48년 5월 4일에 전남 여수에서 제14연대가 창설되었는데, 제14연대는 ‘여순 10·19사건’으로 1948년 11월 20일 해체되었고, 장병들은 제5여단 제4연대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제4연대는 동일부로 제20연대로 개칭되었다. 연대는 본부를 송정리에 두고 지리산과 백운산 등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박 일병이 소속된 제5사단은 육본으로부터 이날 오전 8시에 “제5사단은 12시까지 용산에 도착하도록 이동하라.”는 긴급전문을 받았다. 당시 제20연대는 사단 명에 의거 백운산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 중이었는데, 연대는 이를 중지하고 출동 준비를 하여 26일 오전에 송정리역에서 서울로 출발했다.
제20연대는 용산역에서 하차하여 26일 야간에 미아리에 도착했다. 연대 장병들은 먼저 도착한 제5사단장의 지시를 받아 미아리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사단장은 27일 오전 10시에 미아리 103고지를 전방지휘소로 정하고, 부대가 도착하는 대로 미아리 고개 좌측지역의 103고지 및 171고지를 점령하도록 했다. 이날 오후 4시경에 전반적인 방어선을 형성했다. 이날 북한군들은 20여 대의 전차를 앞세워 오후 5시경에 창동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미아리 방어선으로 돌진했다.
박 일병은 연대 장병들과 함께 적에게 집중사격을 가했고, 적들은 궤도가 벗겨진 전차 1대를 버리고 도주했다. 장병들은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자 사기가 올랐다. 이날 밤에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북한군 전차 40여 대가 재차 공격을 개시하여 미아삼거리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연대 장병들은 적 전차가 목교(木橋) 부근에 이르렀을 때 집중사격을 가했으나 적 전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통과했고, 뒤이어 보병부대가 후속하여 방어 정면을 통과했다. 미아리전투에서 박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6월 27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4판-5면-00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2-ㅍ-04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제14연대 소속으로 되어 있으나, 동 연대는 6·25전쟁 발발 이전에 해체된 부대이고, 군번 고려 시 제20연대 소속으로 추정되며, 동 연대가 최초 전투를 실시한 6월 27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