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춘(朴炳春)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6600966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박병춘 이등중사는 강원도(現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광복과 정부수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던 1949년 6월 1일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제21연대에 현지 입대하여 1950년 4월까지 무장공비토벌작전에 참가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은 전쟁 초반 불리한 전세에도 지연전을 펼쳤지만 낙동강 전선까지 철수했다. 이후 국군은 8∼9월에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반격 준비를 마친 제21연대는 9월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경상북도 영천 북쪽 보현산 초고령 일대에서 방어하고 있는 적 1개 연대를 격파하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이 전투에서 박병춘 이등중사는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건강을 회복하여 10월 초순경에 제5사단 제36연대로 재배치되었다.
사단은 6·25전쟁 초기에 입은 손실로 국군 재편성 시 해체되었다가 10월 8일 재창설되었다. 사단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할 때인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 토벌작전에 투입되어,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하고 12월 5일부로 철수하는 부대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사단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25연대와 교도대대로서 춘천 북방 촛대봉-봉덕산-가덕산을 잇는 선에서 최후 저지선을 설치했다. 북한군 제29연대는 화천으로 이동하여 집결 중이었다. 이러한 북한군은 중공군의 남하에 힘을 얻어 교착상태의 전투가 지속되었다.
사단은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박병춘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 그리고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5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에 배치시켜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개시하여 사단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등중사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제5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박병춘 이등중사는 복무기간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1월 1일 가평 북쪽 지암리 일대 연대 방어진지에서 중공군과 교전 중 인해전술로 공격하는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춘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64742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7묘역-2판-1938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1-ㅇ-06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