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철(朴炳哲)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2705554
  • 전몰일자 : 19500911

공훈사항

박병철 이병은 1930년 10월 25일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던 1950년 7월 2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병철 이병은 낙동강 전투에 투입되었다. 8월 초부터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가산을 점령한 북한군 제13사단과 제1사단이 다부동 남쪽 도로룰 차단하고 대구산 도로를 감제하는 570고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산 및 570고지 일대에는 유엔 전폭기가 수시로 출격하여 폭격하였으므로 북한군은 적극적인 공세 행동을 하지 못하였다. 그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친 북한군은 현풍-왜관-328고지-수암산-유학산-신주막 선에서 저지되었다.
사단은 8월 30일 전투지경선을 조정하고 741-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으며, 박 이병과 장병들은 팔공산 북방 정면에 배치되었다. 9월 4일 북한군 제3사단이 부대 간격을 따라 왜관-다부동 도로 남쪽 464고지로 침투하고 있었으며, 좌측방 왜관도 무인지경이 되고 우측방 에서는 북한군 제13사단이 다부동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가산으로 진출하려던 박 이병과 연대병력은 북한군 제1사단 1개 대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철수하고 말았다. 가산(902m)은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 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여 전술적으로 중요하였으므로 쌍방은 가산을 탈환해야만 하였다. 이후 9월 10일 북한군 제1사단이 가산 일대에서 공격을 재개하여 일부 병력을 도덕산(660m)일대로 남진시키고 일부 병력을 팔공산 일대로 진출시키고 있었다.
박 이병과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병철 이병은 1950년 9월 11일 가산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철 이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5896 육)을 추서하고 위패(07판-1면-34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ㅇ-07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