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철(朴炳喆)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301431
  • 전몰일자 : 19500629

공훈사항

박병철 이등중사는 1930년 1월 28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現 삼례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광복 후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7년 3월 15일 전라북도 이리에 위치한 제3연대에 현지 입대하여 소총병으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48년 2월경 전주로 이동했고 1949년 5월경 제2여단에서 제5여단으로 예속 변경되면서, 박병철 이등중사는 부대조정에 의거 육군직할 공병단으로로 전속되었다.
제1공병단은 1948년 8월 19일 경기도 부평에서 제1공병대대와 제1자동차중대, 제1정비중대, 제1공병기지중대, 공병중공장중대, 경장비중대를 통합하여 창설되었고, 6·25전쟁 발발 당시는 제1건설공병대대, 제9야전공병대대, 창고중대, 제1정비중대로 편성되었다. 박병철 이등중사는 공병단에 배치되어 공병 확장과 교육, 그리고 38도선 일대의 진지구축과 장애물 설치작업에 전념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병철 이등중사가 소속된 공병단은 창동, 미아리 방어선에 투입되어 대전차 육탄공격반을 편성하여 적 전차에 돌입하여 전차를 파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공병단은 경인선 철교(상·하행선) 폭파 임무를 부여받았다. 1950년 6월 28일 01시 45분경 북한군 전차가 돈암동에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은 육군 총참모장은 지체 없이 한강교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02시 30분 한강교는 폭파되었다. 하지만 경인선 철교는 원인 불명으로 불발되고 말았다.
한강방어선 전투 때 공병단은 6월 29일 공병학교 장병들과 함께 혼성 대대로 편성되어 노량진의 한강 인도교와 대방동 삼거리에 이르는 강변에 배치되었다. 부대원들은 반파 상태에 있는 경부선 철교에 폭약을 장전하고 폭발시켰으나, 복선의 남단에 있는 교대와의 연결부분이 약간 이탈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공병단은 이곳에서 7월 3일까지 적의 도하 공격을 6일간이나 지연시켰으나, 북한군이 완파되지 않은 경부선 철교를 수리하여 전차를 통과시킨 후 노량진으로 쇄도해 옴에 따라 수원-평택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철수했다. 이와 같은 6·25전쟁 초기전투에서 박병철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통제하며 교량 폭파 및 장애물을 설치하여 북한군의 도하공격을 저지하다가 적탄에 맞아 6월 29일 적 포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철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0-ㅈ-02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