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철(朴柄喆)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11

공훈사항

박병철 경사는 1921년 9월 7일 충남 당진군 중강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기도경 김포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마산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오전 2시 30분 한강교의 폭파와 함께 수도 서울이 적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한수 이남으로 후퇴한 국군은 한강방어선을 형성했다. 행주 방면에서 김포로 철수한 병력은 이미 적이 김포를 점령하였으므로 오류동과 영등포를 연하는 선으로 철수하여 급편방어를 하게 되었다.
북한군 제6사단의 일부 병력은 김포반도로 상륙하여 아군 제1사단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퇴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적은 아군을 추격하여 오류동 방면으로 우회 진출하여 영등포의 한강방어선을 위협하였으므로 오류동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아군 군경부대는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펼치며 후방으로 철수하기 시작했으며, 김포경찰은 서울을 거쳐 7월 1일 수원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김포경찰은 주요 보급로와 주요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와 구호, 철도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7월 4일 수원이 함락되고 전선이 수원-이천-여주-원주를 연하는 곳으로 형성되자 아군 군경부대는 또다시 남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김포경찰은 오산-평택-천안-공주-전주-함양-진주를 거쳐 8월 2일 마산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김포경찰은 거점방어, 오열 색출,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정보수집활동을 했다.
8월 3일부터 북한군은 마산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박 경사는 진동리에서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다가 8월 11일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철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50판-4면-25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ㅅ-08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