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창(박병창)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59883
  • 전몰일자 : 19510122

공훈사항

박병창 일병은 1930년 8월 20일에 경상북도 영주군 용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10월 중순에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12월 6일에 제2사단 수색대로 보직되었다.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면서 제17연대와 신편 된 제31,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재창설 직후 사단은 지휘소를 서울에서 가평으로 이동하여 예하 부대는 철원, 의정부, 구화리, 홍천 일대에서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사단은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멈추고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 공격에 대비했다.
박병창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사단은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철조망 및 지뢰지대 설치 등 방어준비 강화에 여념이 없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드디어 제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시작하여 서울을 압박했다. 그는 장병들과 방어진지를 사수하며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자 했으나, 이미 적은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며 포위 섬멸을 기도했다.
박병창 일병이 소속된 제2사단은 중공군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진지에서 이탈하여 청평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이미 적들이 후방을 차단한 상태여서 전투를 하며 차단선을 돌파했다. 사단 장병들은 1월 3일에 청평에 도착하여 여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1월 7일에는 충주에 집결한 후 미 제10군단 예비사단으로 풍기에서 재정비하며 충주-단양 간 병참선을 경계했다. 박병창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병참선 주변의 주요지역에 대한 수색작전을 실시하던 중 1월 22일에 적 1개 소대 규모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창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11-ㄹ-07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