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직(朴炳直)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28155
  • 전몰일자 : 19521005

공훈사항

박병직 하사는 1922년 5월 28일 충청남도 논산군 덕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지속되면서 고지 쟁탈전이 진행되던 1951년 11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3사단 제23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병직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3사단은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처 1952년 1월 12일부로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구 백석산 동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제23연대는 사단의 중앙 전방연대로 739고지-949고지를 잇는 방어선을 확보하고, 전방의 662고지에 전초진지를 편성했다. 국군 제2군단이 4월 5일부로 재창설되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박병직 하사가 소속된 제23연대는 9월까지 큰 전투 없이 현 주저항선인 949고지 일대를 방어하면서 위력수색과 매복,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그러다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공격을 가해왔고, 부대원들은 백병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박병직 하사는 장병들과 함께 전초진지를 사수하던 중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부산에 위치한 제1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완쾌 후 그는 평시 관심을 가졌던 의무분야에 근무하기 위해 경상남도 동래에 위치한 육군군의학교로 입교하여 의무병으로서 필요한 소정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대구시 동인동에 위치한 제1외과병원으로 전속되었다.
제1외과병원은 시설 경계를 의무병들이 담당하면서, 때로는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인근 지역으로 출동하여 적 게릴라 소탕 작전도 실시했으며, 특히 전방부대에 출동하여 전투 또는 훈련 중 부상당한 장병들을 치료했다. 그러던 중 박병직 하사는 전방부대의 의무지원을 위해 동해안 고성군 일대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을 도와 부상 장병들을 치료하다가 1952년 10월 5일 적 포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직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8-ㅇ-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