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준(朴炳俊)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68277
  • 전몰일자 : 19520212

공훈사항

박병준 이등중사는 1930년 10월 18일에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면(現 화순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자 1950년 12월 중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병준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1951년에 접어들면서 국군과 유엔군이 평택-삼척을 잇는 37도선 상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후 총반격을 개시하여 서울을 재탈환하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이어서 사단은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에서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9월 4일부터 40여 일간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전투에서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끝내는 동 고지를 적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며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0월 20일에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에 전념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3일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방어선에는 좌측 전방에 제36연대, 우측 전방에 박병준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35연대를 배치하고, 제27연대를 예비로 간성 부근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에 사단은 진지를 더욱 보강하면서 적정 탐색 및 적 침투 방지를 위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지속했다. 박병준 이등중사는 2월 12일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수색정찰 중 적과 조우하여 교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준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ㄱ-04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