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주(朴炳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39644
  • 전몰일자 : 19520129

공훈사항

박병주 일병은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9월 초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병주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휴전회담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작전과 전선 개선, 그리고 휴전 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한 고지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으로 변모되고 있었다.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전투에서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끝내는 동 고지를 적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며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951년 10월 20일에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양양으로 이동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2일까지 군 예비로서 양양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에 전념을 하면서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사단은 1월 13일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방어선에는 좌측 전방에 제36연대, 우측 전방에 박병주 일병이 소속된 제35연대를 배치하고 제27연대를 예비로 간성 부근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에 사단은 진지를 더욱 보강하면서 적정 탐색 및 적 침투 방지를 위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지속했다. 박병주 일병은 1952년 1월 29일 분대원과 함께 매복 작전 중에 적 침투부대의 기습으로 교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주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ㅇ-04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