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호직 (姜鎬直)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36005
  • 전몰일자 : 1953-7-10

공훈사항

강호직 하사는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본부 직할부대에서 복무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 전선에서 국군이 철수를 거듭하게 되자, 채병덕 총참모장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하여 의정부지구방어에 중점을 두고 전방의 제1사단과 제6사단 및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함으로써 수도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였다. 따라서 6월 25일 11:00에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하고 이날 오후에는 제18연대(-)도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하여 가평지구로 투입하였다.
그후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차를 앞세운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6월 28일에는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한강방어선에서 6일간을 지탱한 후 시흥-수원-평택-대전-김천 등을 거쳐 8월초에는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국군 및 유엔군은 1951년 1월 23일을 기하여 일제히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한강남안-횡성선에 이르렀을 때 다시 중공군의 반격에 부딪쳐 지평리, 원주 일대에서 한차례의 공방전을 치렀으나, 이를 격파하고 진격을 계속하여 1951년 3월 15일 서울을 탈환하였으며, 이의 여세를 몰아 전진을 계속하여 3월말에는 38도선을 또다시 회복하였다. 이때, 유엔군은 38도선 방어에 유리한 캔자스선으로 불리는 임진강-영평천-화천 저수지-남애리를 연결하는 요지를 점령하고, 중부지역에서는 와이오밍선으로 불리는 철원-김화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강호직 하사는 중동부지구전투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3년 7월 10일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