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일(朴炳一)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30381
  • 전몰일자 : 19520316

공훈사항

박병일 하사는 1926년 3월 7일에 전라남도 무안군 압해면(現 신안군 압해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7월 21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경상남도 진해에 있는 포병학교에서 포병 주특기 교육을 받고 제11사단 제27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한편 제27포병대대는 포병이 확장됨에 따라 1950년 10월 8일부로 창설되어 제11사단에 예속되었다. 대대는 호남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하는 제11사단을 화력지원하다가 1951년 11월 5일 제6사단으로 예속 변경되었다.
박병일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1951년 가을이 되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유엔군 작전방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공세작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6사단은 강원도 화천 일대 백암산까지 진출하여 철의 삼각지대의 우반부인 등대리-단거리-수리봉을 연하는 선을 확보하고 있었다.
사단은 먼저 주방어선 전방의 819고지를 9월 24일부터 9월 28일까지 공격하여 탈취했다. 그리고 10월 13일부터 10월 21일까지 계속적으로 공격을 실시하여 교암산-송설리-송동리 선까지 진출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박병일 하사가 소속된 제27포병대대는 사단의 진출에 따라 기동부대를 밀접하게 지원하면서 적을 화력으로 제압했다.
포병은 전방사단의 화력증강을 위해 처음으로 155mm 곡사포대대를 창설하였는데, 1951년 12월 15일 제96포병대대가 창설되어 제6사단을 직접지원했다. 이때 박병일 하사는 제27포병대대에서 제96포병대대로 전속되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며 사단은 큰 전투 없이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전투정찰, 매복 작전 등을 지속했다. 적은 정찰대를 침투시켜 아군 후방교란을 시도했고, 그 일환으로 아군 포병진지를 급습하기도 했다. 박병일 하사는 2포대 제3포반장으로서 화력지원 임무 수행에 솔선수범 앞장서 왔다. 하지만 그는 1952년 3월 16일 포상 보강 작업 중 적 정찰대의 기습을 받고 교전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일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34묘역-판-2253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ㅊ-05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