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인(박병인)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676853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박병인 상병은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휴전협상은 지연되고, 고지쟁탈전은 격화되고 있던 1951년 12월 22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병인 상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952년 2월 초에 제2사단은 육단리-적극산을 잇는 선에 주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전방의 522고지를 탈취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3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사창리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을 실시하여 전기전술을 숙달했다. 다시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면서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방어진지에 배치된 미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이후 사단은 군단의 명에 의거 오성산에서 뻗어내린 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했다.
박병인 상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10월 14일 공격 첫째 날에 사단의 조공으로서 주공보다 1시간 먼저 공격하여 격렬하게 저항하는 중공군을 격퇴하고 목표를 탈취했다. 이에 오성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이 바로 그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이후 피아간 공방전은 11월 24일까지 6주 동안에 계속되었으며, 결국 제2사단은 저격능선을 탈취하여 확보했다.
제2사단은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쳐 1953년 여름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281고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중공군 제23군 예하의 제73사단은 휴전협상이 타결될 전망이 보이자 6월 29일에 전초진지인 화살머리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했다. 제31연대는 최초 방어에 실패하여 적에게 화살머리고지를 빼앗겼으나, 다음날인 6월 30일에 제32연대와 제17연대의 즉각적인 역습으로 화살머리고지를 다시 탈취했다.
박병인 상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7월 1일부로 제17연대로부터 화살머리고지를 인수하여 확보하고 있었는데, 중공군들이 7월 6일에 다시 화살머리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했다. 이에 제31연대는 5일간 격전 끝에 화살머리고지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7월 11일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7월 16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인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1407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26판-2면-06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ㄴ-00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