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익(박병익)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58951
  • 전몰일자 : 19520428

공훈사항

박병익 이등중사는 1928년 3월 13일 경상북도 금릉군 조마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적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시기에,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박 이등중사는 1951년 11월 6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캔자스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 중이었고,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양구군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12월 25일 중공군은 연대가 점령하고 있던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왔고, 연대는 28일까지 수차례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1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1952년 2월로 접어들어 미 제8군은 전선의 침체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포로획득에 목적을 둔 ‘유인작전(Operation Clam Up)’을 계획했다. 이에 따라 제3연대는 1952년 2월 11일 중공군을 크리스마스고지로 유인하여 타격을 주려 하다가, 오히려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13일까지 수차례의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2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린 이후 전투는 휴전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고지쟁탈전 양상으로 변모되었다. 휴전회담이 지속 진행되면서 연대는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적진에 대한 위력수색과 매복, 교란작전, 수색정찰 등을 지속했다. 박 이등중사는 1952년 4월 28일 수색정찰작전 중에 적의 기습을 받고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익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5646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52묘역-2판-2689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8-ㅎ-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