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윤(朴炳允)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47522
  • 전몰일자 : 19510910

공훈사항

박병윤 하사는 1926년 8월 27일에 경상남도 김해군(現 김해시) 진영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23일 카투사(KATUSA, 주한 미군에 파견된 한국군)병으로 선발되어 경상남도 구포에 위치한 육군 제3훈련소에 입대했다. 박병윤 하사는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미 제8군으로 배치되었으나, 이후 부대조정에 의해 다시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병윤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 중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영남지역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한 후 철수하는 부대를 엄호하기 위해 12월 5일경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이어서 사단은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에서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 초순경에 사단이 배속된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5사단은 8월 31일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최초 제27연대를 주력으로 사단목표인 가칠봉 동북쪽 능선과 서희령(西希嶺)을 점령했으며, 9월 5일 전 작전지역을 감제 가능한 1,211고지를 목표로 공격했으나 진전이 없었다.
다음날 제35연대 각 대대로 제27연대를 증원하여 9월 9일에 1,211고지를 최초 점령하였으나 적 역습으로 가칠봉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가칠봉 부근의 진지를 강화하다가 9월 17일에 제35연대로 주공을 전환하여 공격했다. 박병윤 하사는 복무기간 중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분대원을 통제하면서 가칠봉 진지를 보강하다가 9월 10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윤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6508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18묘역-9판-475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3-ㅇ-07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