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원(朴炳源)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20205

공훈사항

박병원 순경은 1931년 3월 10일 경남 거창군 고재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서울시 서대문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거창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한수 이남으로 후퇴한 국군은 한강방어선을 형성했다. 6월 30일 1개 대대규모의 적이 오류동을 목표로 공격을 하자 7월 1일까지 피·아 간 전투가 벌어져 적을 격퇴했다. 그러나 7월 3일 전차 17대를 앞세운 적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영등포를 비롯한 오류동의 방어선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에 서대문경찰을 비롯한 각 경찰부대는 수원으로 철수하여 오열색출, 정보수집, 철도경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3일 미 제1기병사단이 영동 지방에서 적 게릴라부대의 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자 1만 5천 명의 경찰(박 순경 포함)이 유엔군에 배속되어 적의 게릴라 침투 방지와 소규모 전투를 병행하면서 유엔군을 지원하게 되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전선이 북상됨에 따라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경찰관서의 수복작전을 전개하였다. 서대문경찰은 9월 25일 서대문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활동을 강화했다.
압록강까지 북상했던 전선이 중공군의 제2차 공세로 인해 다시 남하하자 1951년 1월 3일 치안국은 대구로 철수, 32개 전투대대를 편성하여 군의 주보급로 경비 임무를 맡게 했다. 서대문 경찰은 1월 30일 경북 청도에서 창설된 운문산전투경찰사령부에 파견되었다. 3월 1일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작전 특별기간(제1차: 1951.3.1-4.10, 제2차: 1951.4.15-5.25, 제3차: 1951.7.15-8.15)을 설정하고 태백산과 지리산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전개하도록 했다. 박 순경은 제1차-제3차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공비 4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박 순경은 이 작전이 끝난 후 태전사(태백산지구전투사령부) 부대에 편성되어 제1기(1951.10.02.-12.14), 제2기(1951.12.16.-1952.01.04.), 제3기(1952.01.04.-01.31.)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그 후 박 순경은 2월 5일 거창에 투입되어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적을 격멸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원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ㅋ-07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