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용(朴炳龍)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41164
  • 전몰일자 : 19521103

공훈사항

박병용 하사는 1930년 8월 24일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9월 16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병용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까지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사단과 중공군 간에 전초진지 쟁탈전을 벌였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연하는 선에서 북한군과 대치하였고 달려드는 적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격렬히 저항하여 이를 격퇴하였다.
박병용 하사와 연대병력은 불모고지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1952년 10월 1일 임진강 동서안, 역곡천 남안을 연한 주 저항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박 하사를 비롯한 사단 장병들은 2개월간의 교육 훈련으로 인하여 전투력이 우수하고 사기가 왕성한 편이었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전초가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탈환하기 위하여 연대수색중대 1개 소대와 지원받은 사단수색중대 2개 소대로 다음날(10월 7일) 동고지에 대하여 역습을 실시하였다. 연대수색중대 1개 소대가 텟시 고지로, 사단수색중대 2개 소대가 니키 고지로 각각 진출, 8부 능선까지 도달하여 돌격을 감행하였으나, 고지상의 북한군으로부터 완강한 저항을 받아 공격이 더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11월에 접어들어 사단은 포로획득과 북한군 전초기지 파괴 작전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으며, 소노리의 상실로 주저항선이 북한군에게 위협받고 있었으므로 기필코 이를 탈환하고자 11연대를 작전에 투입하였다. 공격에 앞서 12개 포병대대가 소노리 고지 일대에 포격을 집중하였으며, 유엔 공군기 B-26 6대가 목표지점을 폭격하였다.
박 하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그는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북한군과 맞서 싸웠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병용 하사는 1952년 11월 3일 연천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용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ㅍ-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