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옥(朴炳玉)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사
  • 군번 : 6700259
  • 전몰일자 : 19501101

공훈사항

박병옥 중사는 1929년 2월 4일 전라남도 무안군 흑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12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당시 38도선 일대에서는 북한군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후방지역에서도 침투한 북한의 무장공비와 국내의 공산주의자들이 연결된 소요사태가 곳곳에서 발생해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병옥 중사가 소속된 수도사단은 의정부 지구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6월 29일-7월 4일까지 한강 및 시흥지구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 제7사단의 남하를 6일간 지연시켰으며, 이후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으로 철수하였다. 박병옥 중사와 장병들은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경주북방에 있는 호명리와 곤제봉, 무릉산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을 물리쳤다. 9월 16일 박 중사와 장병들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데도 불구하고 동해안의 함포지원 하에 형산강 도하작전을 계획대로 강행하였다. 18일 형산강 북안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북한군에게 해・공군이 포격과 폭격을 하는 가운데 사단장의 진두지휘 하에 실시된 도하작전을 성공하였다.
치열한 격전을 치르면서 형산강 북방의 공격목표를 향하여 진출하던 박병옥 중사와 장병들은 20일에 포항을 탈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들은 퇴각하는 북한군을 낙동강전선에서 도평-영양-춘양-영월-평창-속사리 방향으로 추격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이후 11월에 들어 길주 동남쪽에 있는 552고지에 있던 적이 맹렬한 사격을 가해와 박 중사와 장병들은 즉각 공군 및 포병의 긴급지원을 요청하여 지원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힘겹게 전진해 나갔다. 이어 봉강을 공격 중이었으나 전차로 증강된 대대 규모의 대병력이 역습을 가해 오자 박 중사와 장병들은 어랑천 남안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병옥 중사는 1950년 11월 1일 길주 부근 전투에서 퇴각하는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옥 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5판-5면-1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ㅌ-00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