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오(朴炳五)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635738
  • 전몰일자 : 19510804

공훈사항

박병오 이병은 1924년 12월 3일에 충청남도 천안군 병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부근에서 공산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월 4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수색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고, 적 지휘소 및 보급소를 습격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박병오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5월 중순, 제6사단은 용문산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에 제6사단은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을 탈취하고, 4월 21일에 사창리까지 진출했으나,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사창리전투에서 큰 피해를 받고 가평을 거쳐 용문산 일대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전초지역에서 5일간 사수하여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6사단은 5월 20일부터 용문산 방어진지에서 즉각 공격으로 전환하여 북한강까지 진출했고, 5월 25일에 가평-춘천 사이의 산악지대인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5월 28일에 구만리발전소-병풍산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사단은 6월 5일부터는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하여 6월 10일에 최종목표인 취봉을 탈취하여 철원-김화 일대를 확보하고 방어로 전환했다. 박병오 이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여 사전 대비토록 했다.
유엔군은 6월 23일 소련의 유엔대표 말리크가 제의한 휴전협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박병오 이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주로 적진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했다. 그러던 중 수색소대는 8월 4일에 적진에서 적정을 수집하던 중 적 부대에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오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8묘역-2판–191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ㅁ-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