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열(朴炳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607017
  • 전몰일자 : 19530223

공훈사항

박병열 일등상사는 1928년 1월 5일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9년 3월경 제3여단 제6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22연대로 전속되었다. 박 일등상사는 1950년 3월까지 경북의 일월산, 보현산 등지에서 북한의 유격대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2연대는 고양, 한강방어선의 금곡리, 풍덕천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조치원-청주-보은 일대로 지연전을 펼쳤다. 연대는 7월 26일부터 9월 14일까지 동해안 축선의 강구, 영덕, 흥해,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뺏고 뺏기는 공방전 끝에 적의 공격을 물리쳤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제3사단은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박 일등상사와 연대 장병들은 파죽지세로 나아가 강릉(30일)을 탈환하고,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하여 일일 평균 24km의 속도로 북진하여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했다. 연대는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5월 2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 일대의 1,211고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973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공격을 가해왔고, 연대는 역습을 실시하여 백병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후 연대는 주저항선인 739고지 일대를 보강하며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박 일등상사는 1953년 2월 23일 소대원을 이끌고 매복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적 정찰대의 기습으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열 일등상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34422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41묘역-1판-1615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9-ㄱ-00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