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열(朴柄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305447
  • 전몰일자 : 19501024

공훈사항

박병열 일병은 전라북도 김제군 공덕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8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제1군단에 배치되었다.
박병열 일병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제1군단은 동부전선에서 9월 15일 안강 평야와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안강 남쪽에는 수도사단이, 포항 남쪽에는 제3사단이 경주 방향으로 돌파하려는 북한군 제12사단과 제5사단의 공격을 저지하고 반격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9월 16일 군단은 적정 탐색을 위해 1개 소대 규모의 특공대를 형산강 북쪽 500m까지 진출시켰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철수하였다. 박 일병과 장병들은 다음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동해안의 함포지원 하에 형산강 도하작전을 계획대로 강행하였다. 그러나 대안에 배치된 적의 주력이 도하 부대에 집중사격을 가해 옴에 따라 도하가 불가능하였으며, 오후 늦게 일부 병력의 도하가 성공하였으나 적 중화기의 집중사격을 받고 견디어 내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1950년 9월 18일에는 형산강 북안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적에게 해 · 공군이 포격과 폭격을 하는 가운데 사단장의 진두지휘하에 실시된 도하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치열한 격전을 치르면서 형산강 북방의 공격 목표를 향하여 진출하여 20일에는 포항을 탈환하였다. 이후 9월 30일 38도선 돌파 명령을 받은 제1군단은 현재의 추격을 계속하여 양양을 점령, 확보하는 동시에 38도선 이북 진출을 용이하도록 하라는 군단장의 명령에 따라 10월 1일 오전 5시 군단 병력은 선봉으로 인구리 북쪽 진지에서 38도선을 넘어 양양을 목표로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박병열 일병이 소속된 군단은 북한군 제5사단을 주축으로 하는 38도선 방어부대의 경미한 저항을 격파하고 10월 1일 오후 2시에 38도선 북쪽의 20km 지점인 동해안 가도의 양양에 돌입하였다.
박 일병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하였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박병열 일병은 1950년 10월 24일 청천강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77-ㅇ-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