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열(朴丙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1010
  • 전몰일자 : 19510715

공훈사항

박병열 일병은 전라남도 광산군 광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10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0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병열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1월 중순, 제11사단은 전남 남원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지리산을 중심으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당시 사단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하여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제1단계 작전은 10월 1일∼25일까지로 훈련과 소규모 토벌작전을 병행한 시기였다. 제2단계 작전은 11월 1일∼12월 31일까지로 소위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개념에 입각해 산간벽지에 있는 민간인들을 소개하고 공비의 보급로를 차단해 적을 기아 상태에 몰아넣어 공비소탕에 주력한 시기였다. 제3단계 작전은 1951년 1월 1일부터 4월 초까지로 공비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데에 전 병력을 집중한 시기였다.
박병열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는 광주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 대해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연대는 1951년 2월부터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대대적인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여 공비들을 소멸시켰다. 이에 제11사단은 4월 6일에 공비소탕임무를 제8사단에 임무를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를 맞아 속초-간성 선에서 저지하다가 25일에 양양 북방의 대포리를 연하는 선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사단 장병들은 방어편성을 하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병열 일병이 소속된 제11사단은 5월 7일에 마등령-저항령-989고지 방향으로 반격하여 5월 11일에 989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5월 16일에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을 맞아 진격을 멈추고, 철수를 거듭하여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사단은 5월 22일부터 강릉-강성대(양양)-향로봉(간성)-건봉산 방향으로 반격하여 6월 10일에 건봉령을 좌우로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쌍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에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7월 15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8면-0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ㅈ-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