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열(朴炳悅)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201698
  • 전몰일자 : 19500707

공훈사항

박병열 이등상사는 1924년 5월 7일에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에서 출생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7년 10월 27일, 그는 충남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연대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2연대가 1950년 6월 20일에 홍천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을 때, 그는 제6사단 직할부대인 통신대로 전속되었다.
박병열 이등상사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홍천에 위치한 제2연대를 직접지원하고 있었다. 제2연대 장병들은 북한군의 침공에 대비한 방어 준비에 집중했다. 장병들은 방어진지에 2∼3개소의 통나무로 만든 유개호를 마련하고 호(壕)간에는 철조망을 설치하고 그 중간에는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박병열 이등상사는 연대와 대대 간의 통신선 설치에 투입되어 동분서주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인 침략을 했을 때, 박병열 이등상사가 소속된 통신중대는 곧바로 방어지역에 투입되어 즉각 통신선 점검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쳐들어왔다. 제2연대 장병들은 인제 북방의 산악지형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27일까지 적 부대의 홍천 점령을 저지시켰다.
제2연대는 북한군의 공격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6월 27일 오후 4시부터 홍천에서 철수를 개시하여 횡성 일대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6월 30일까지 적의 진출을 저지하다가 원주로 철수했다. 연대는 7월 1일에 충주로 이동하고, 7월 4일에 음성으로 이동면서 북한군 제15사단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곳에서 제2연대는 7월 6일에 적의 강력한 공격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박병열 이동상사는 통신소대 선임하사로서 통신 지원 임무를 주로 수행하면서 직접 전투하기도 했다. 그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7월 7일에 연대와 사단 간에 통신소통을 위해 활동하다가 적 부대의 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로 피해를 받았다. 이날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열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38-ㅂ-03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