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수(朴炳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22660
  • 전몰일자 : 19521003

공훈사항

박병수 하사는 1928년 10월 15일 강원도 홍천군 흥인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3월 초순 제주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병수 하사가 전선에 배치될 당시 사단은 1952년 4월 5일부로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동부전선을 방어 중이었다. 박 하사와 장병들은 1952년 6월 16일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690고지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1Km의 능선), 수도고지(663고지 북 500m, 610고지)등에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이때 사단은 여호고개-여문리를 경계로 좌전방에 1연대, 우전방에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하여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박병수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새벽 1시에 621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날은 가랑비로 인해 기도비닉 유지에 유리한 반면 적정판단의 어려움이 있었다. 북한군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면서 일시 고지 정상을 장악하였으나, 고지 서북쪽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고 물러났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말부터 주저항선을 정비하여 진지 강화에 주력하였다. 그러던 중 8월 5일 소강상태를 깨고 수도고지로 공격을 재개하였다. 그는 2차례에 걸쳐 진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수도고지의 전초소대가 북한군의 포격에 견디지 못하여 주진지인 663고지로 철수하고 말았다. 북한군은 그 기세를 몰아 663고지 일대로 압박해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6일부터 수도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수차례 반복되었으며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그 뒤 8월 중순에 접어들어서 다시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9월 6일, 북한군이 또다시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하여 수도고지가 함락되었다.
박 하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병수 하사는 1952년 10월 3일 수도고지 전투에서 북한군의 포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6-ㄷ-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