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수(朴炳樹)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35512
  • 전몰일자 : 19511125

공훈사항

박병수 하사는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박 하사는 1951년 8월 18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현지 입대했다.
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군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중공군 5월 공세 이후 중공군과 유엔군은 피아간에 군사작전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7월 10일 최초로 양측 대표가 휴전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나,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무렵의 전투양상은 휴전협상에서의 설전과 더불어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진지전으로 진행되었다.
미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미 제10군단에 임무를 부여했고, 이에 따라 사단은 8월 9일부터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피아간에 뺏고 뺏기는 치열한 교전을 거의 한 달여간 실시한 끝에 9월 2일 목표를 확보했다. 이어 사단은 883고지-892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9월 18일 883고지를 확보했다.
사단은 미 제2사단의 단장의 능선 탈취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고, 연대는 백석산 남방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1,016고지를 점령했다. 연대는 26일 백석산 주봉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고지 탈취에 실패하고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캔자스선 남쪽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육본 직할로 소속이 변경되어 양구 일대에서 부대정비 후,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있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11월 25일 적이 암동 일대의 연대 진지를 기습적으로 습격해 왔고, 연대는 29일까지 격전을 치른 끝에 적을 물리치고 진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박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11월 25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5판-5면-26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3-ㄱ-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