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수(박병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중령
  • 군번 : 11606
  • 전몰일자 : 19500819

공훈사항

박병수 중령은 1920년 9월 5일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험난한 격동기에 청년기를 맞아 조국을 지키는 간성이 되고자 군문을 두드렸다. 그때 신생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태릉(현 서울시 노원구)에서 경비대의 간부를 양성해오던 경비대사관학교도 육군사관학교로 전환되었다. 박병수 중령은 1948년 4월 19일 육군사관학교 장교후보생으로 입교해 같은 해 10월 12일 장교로 임관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병수 중령이 제1사단 사령부가 위치한 수색(현 서울시 은평구) 및 제1사단의 책임 지역인 개성과 임진강 일대에서 38도선의 방어력 증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던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박 중령은 비상소집에 따라 즉각 전투에 투입하였다. 박 중령이 지휘하는 제15연대는 임진강에서 한강선까지 축차 방어전을 전개하다가 수원, 미원을 거쳐 함창 일대에까지 지연전을 전개하였다. 영강 동쪽의 북한군 제1, 제13사단을 차단 포위하기 위해 7월 27일 미명부터 공격에 나서 오정산 일대를 탈환함으로써 북한군은 퇴로차단의 위협을 받아 일시에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박병수 중령은 함창 서북방에서 적정이 확인되자 즉시 모든 지원화력을 그곳으로 지향할 것을 요청하는 한편, 정비 중인 제15연대 병력을 즉각 투입하여 도로와 이안천을 중심으로 방어력을 강화하였다. 북한군 제1사단은 4대의 장갑차를 선두로 1개 연대가 도로상으로 접근해 오자 미리 계획된 화력으로 집중 사격하여 격퇴하였다.
제15연대는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13일 다부동 지역에 집결한 후 새로운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제15연대는 328고지 일대의 계획된 진지로 진출하였다. 이어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박 중령은 위기에 놓인 조국을 구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두지휘하며 전투에 임하였던 박병수 중령은 1950년 8월 19일 유학산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수 중령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을지무공훈장(훈기번호 108 국)을 추서하고 유해(33묘역-판-159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ㄲ-04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