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수(박병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47306
  • 전몰일자 : 19510413

공훈사항

박병수 일병은 출생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북진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23일 카투사병으로 선발되어 경상남도 구포에 위치한 육군 제3훈련소에 입대했다. 박병수 일병은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미 제8군으로 배치되었으나, 이후 부대조정에 의해 제5사단 수색대로 재배치되었다. 당시 수색대는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 보고하거나 주요시설을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박병수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많은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철수하는 부대를 엄호하기 위하여 1950년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하였으며,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하여 후방을 차단하였고, 2일 밤에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했다. 이에 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북한군 제10사단이 제천-단양-안동까지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위협하자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하였다. 이후 사단은 반격으로 전환할 때 1951년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하여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박병수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2월 12일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철수를 개시하여 제천 북쪽지역으로 이동했다. 이어서 사단은 3월 3일에 다시 운교리-안흥리 전방지역으로 진출해 반격작전을 준비하면서 6일에 봉복산-태기산을 목표로 공격하여 10일에 적의 강력한 거점인 둔방내리 남쪽의 고지를 확보했다. 그 후 사단은 14일에 적의 최후 거점인 태기산을 점령하고, 15일에는 북쪽의 운무산-흥정산을 잇는 선으로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4월 9일 소양강 도하작전을 감행하면서 다음날 공격을 개시하여 19일에 목표인 인제 지역을 점령하고, 그 북쪽 봉화봉과 월학리 일대로 진출하며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박병수 일병은 분대원과 함께 적 연대 지휘소를 습격 중 4월 13일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2면-1720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ㅊ-024)에 그의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