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석(朴秉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201369
  • 전몰일자 : 19510225

공훈사항

박병석 일병은 충청남도 공주군 판교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선으로 후퇴를 거듭하던 1950년 7월 중순,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창설 요원으로 배치되었다.
박병석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중순, 제11사단은 갓 창설되어 10월 14일 남원에 도착하여 공비소탕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하 부대로 제9연대, 제13연대, 제20연대를 비롯해 제3, 5, 6, 7, 8경비대대를 배속 받았다. 박병석 일병는 제9연대로 배치되었는데, 연대는 9월 30일 대구에서 총병력 2,979명으로 창설되었으며, 경상남도 지리산 동남쪽 지역에 대한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부여받고 10월 초에 산청지역으로 이동했다.
제11사단은 호남지구 공비토벌작전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하여 수행했다. 제1단계 작전은 1950년 10월 1일∼10월 25일까지로 사단의 주력이 호남지구에 집결한 후 각 지구 행정기관의 복구 및 적정을 수집하는 시기였다. 제2단계 작전은 11월 1일∼12월 31일까지로 소위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 개념에 의거 산간벽지에 있는 민간인들을 소개하고 공비들의 보급로를 차단해 적을 기아 상태에 몰아넣는 한편,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여 공비 소탕에 주력한 시기였다. 제3단계 작전은 1951년 1월 1일부터 4월 초까지로 게릴라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데 집중한 시기였다.
박병석 일병이 소속된 제9연대는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게릴라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사단 작전지침에 따라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게릴라의 재집결을 봉쇄하기로 했다. 당시 대규모 중공군의 서울 재탈환에 힘입어 게릴라들은 개전 초기와 같은 상황이 도래할 것으로 믿고 수백명 단위로 보급 열차를 파괴하거나 군경을 습격하는 등 강력한 작전을 펼쳤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2월 10일에 공비토벌작전을 나갔다가 대규모의 적 게릴라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3-ㄴ-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