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상(朴炳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389
  • 전몰일자 : 19510217

공훈사항

박병상 일병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상왕십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1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본 직할인 제4경비사단으로 배치되었다.
박병상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2월 초순, 제4경비사단은 서울 인근에 주둔하며 적 게릴라 소탕 작전을 하고 있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은 10월 24일과 11월 24일에 압록강을 향해 총공세를 펼쳤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당하여 큰 피해를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잔적들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철수할 때에 주요 병참선이 지나가는 철원-김화-평강 일대에서 게릴라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했고, 또한 서울 인근에서 주요시설을 습격하여 아군의 후방을 위협하고 있었다. 박병상 일병이 소속된 경비사단은 서울 인근에서 이러한 적 게릴라 소탕 작전을 하고 있었다.
대규모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주력을 서울을 향해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펼쳤고, 이에 보조를 맞춰 북한군 잔적들은 후방교란 활동에 더 적극성을 띠었다. 이에 정부 및 육군본부는 다시 부산과 대구로 이전하였고, 경비부대는 육군본부가 이전한 이후에도 서울에 남아 잔적 소탕을 계속해서 실시했다. 그러던 중 경비사단은 1951년 1월 5일 새벽에 아군 주력부대가 서울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을 확인한 후에 철수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신정공세를 평택-삼척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서서히 반격으로 전환할 준비를 하던 중, 중서부전선으로 지향된 중공군의 2월 공세가 있었다. 이에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박병상 일병이 소속된 경비부대는 육군본부가 위치한 대구로 이동하여 경비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적 게릴라 부대는 전국 곳곳에서 후방교란작전을 실시했으며, 특히 육군본부가 위치한 대구 부근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경비부대는 2월 17일에 대구 인근에 나타난 적 게릴라를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85-ㅇ-05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