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봉(朴秉奉)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사
  • 군번 : 1805757
  • 전몰일자 : 19510814

공훈사항

박병봉 중사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장전동 172에서 1926년 2월 28일에 출생하였다. 박 중사는 1949년 7월 15일에 입대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중사가 입대했을 당시 제8사단은 인제군으로부터 양양군 일대에 이르는 지역의 경계를 담당하며 후방에 침투하는 적 유격대에 대한 토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박 중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강릉지구전투에 투입되었다. 북한군의 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경상북도지역으로 지연전을 펼쳤다. 1950년 9월 낙동강 전선에서 전세를 역전하여 10월에 38도선을 통과하여 북진하였지만 10월 말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금 철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1951년 1월 중순 제8사단 제10연대는 중공군의 제3차 공세로 강원도 부근에서 철수하는 중이었다. 후에 제10연대 장병들은 2월 강원도 횡성군에 주저항선을 설치하고 적의 공세에 대비해 방어진지를 철저히 구축하며 2월 5일 횡성 부근에서 위력수색작전을 전개했으나, 중공군의 제4차 공세로 완전히 포위되어 고립된 상태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채 주포리로 흩어지며 철수하였다.
전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은 제8사단 제10연대는 대구로 이동하여 후방경계 임무를 지원하며 전력을 보충했다. 전력 보충 이후 4월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호남지역 무장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고 5월 말에는 인제에 진입해 미 제10군단에 편입되어 후방지역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적군은 1951년 7월 28일 철미동 지점에서 제8사단에 집중공격을 가했으나, 제8사단은 철저히 은폐하여 적의 동향을 살폈다.
박 중사가 소속된 제8사단 제10연대는 성공적인 철미동 지구 전투 이후 후방지역 경계 임무를 비롯하여 유격전을 펼치고 수색을 통해 적군의 동향 파악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후 군단은 전선을 밀어올리기 위해 8사단을 중심으로 1031고지와 965고지 공격 임무를 부여하였으며, 1031고지-965고지 공격에 앞서 제8사단장은 445고지-562고지-785고지-1010고지군을 탈취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8월 9일 05:00에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고 이들 부대는 북한군 제2사단, 13사단의 완강한 저항 속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고지를 탈취함으로써 6일간의 고지쟁탈전을 종료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박 중사는 1951년 8월 14일 안타깝게도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봉 중사의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4953 국)을 추서하고 그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0묘역-2판-1639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ㅎ-04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