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민(朴炳玟)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8891
  • 전몰일자 : 19530701

공훈사항

박병민 일병은 전라북도 전주시 무주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9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병민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던 때, 제2사단은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강화하고 있었다. 중공군들은 10월로 접어들면서 백마고지와 화살고지 등을 공격하여 휴전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자 했다. 이에 유엔사에서는 적의 공격기세를 꺾고 이들의 공격 방향을 전환시키기 위해 다른 지역의 주요 감제고지를 탈취하기로 했다.
제2사단은 유엔사의 작전지침에 따라 10월 14일에 중공군 제15군 예하 부대가 배치된 김화 북쪽의 저격능선을 공격했다. 주로 제17연대와 제32연대가 1개 대대씩 교대로 공격하고 방어했다. 제17연대가 첫날 공격에서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으며 공격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후 중공군의 즉각적인 역습으로 다시 빼앗기고, 그리고 다시 빼앗는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계속되었다. 이 능선은 쌍방 간에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박병민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가 11월 24일에 저격능선에서 중공군의 마지막 공격을 격퇴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저격능선전투는 종료되었다.
제2사단은 12월 1일부로 다시 군단 예비로 전환되면서 사창리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FTC훈련)을 실시하다가, 12월 30일에 미 제3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하여 철원 고대산 전방의 독서당리, 중강리, 하진명동 일대로 이동했다. 박병민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좌측연대로서 하진명동 일대에 방어배치 되었다. 이후 전선은 1953년이 되어서도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박병민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는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쳐 1953년 6월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281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중공군 제73사단은 6월 29일에 화살머리고지에 대해 공격을 감행하여 탈취했다. 제31연대는 최초 방어에 실패하여 적에게 화살머리고지를 빼앗겼으나, 다음날인 6월 30일에 제17연대와 박병민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의 즉각적인 역습으로 다시 화살머리고지를 탈취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7월 1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1판-2면-11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ㅌ-07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