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병무(朴炳武)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10788
  • 전몰일자 : 19520623

공훈사항

박병무 하사는 1927년 12월 25일에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옥산리에서 출생하였다. 박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박 하사는 1951년 4월 25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2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의 입대 당시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중공군은 5월 16일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 공세로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되었다. 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전력에 큰 손실을 입은 제9사단은 1951년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해 와이오밍(Wyoming)선(캔자스선 북방 20km 내외의 철의 삼각지대를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65군 예하 제165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결과로서 제9사단은 고대산을 확보하였다.
이어 사단은 철의 삼각지 확보에 중요한 감제지형인 김화읍 계웅산 전투에 투입되어 치열한 공방전 끝에 6월 28일에 동 고지를 확보한 후, 계속되는 적의 역습을 격퇴했다. 아군은 1951년 10월이 되자 적군이 휴전회담을 제의한 이유가 전력 정비를 위한 시간 확보에 있음을 간파했다.
이에 아군은 일명 ‘코만도 작전’이라는 추계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치게 되었다. 제9사단은 10월 5일부로 다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10월 17일에 미 제3사단이 맡고 있던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의 방어진지를 인수하여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제9사단은 1952년 전반기까지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전투정찰과 수색·매복작전 등을 지속하였다.
연대는 1952년 6월 21일에 대규모의 포로획득에 성공했고,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중공군 1개 연대 병력 3,500여 명이 방어하고 있던 사단 정면의 5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박 하사는 1952년 6월 23일 수색작전 중 적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병무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ㅎ-01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